이건 그야말로 후기임 왜냐면 연 끊기 시작한 지 10년 됐거든
나는 사춘기 때부터 엄마한테 기죽어다니는 애가 아니었어
엄마가 날 상처입히면 그 즉시 악을 쓰고 화를 내고 덤볐어
그런데도 엄마는 내가 엄마 말이 상처라고 말하면 그런 말에 상처 받는 내가 이상한 거래
자기가 그런 말 해도 한 귀로 듣고 흘리면 되지 왜 담아두냐고 담아두는 내가 잘못이라는 거야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아주 모범적인 딸이었고 한 번도 어긋난 적 없이 살았어
엄마의 요구대로 살지도 않았어 나 하고 싶은 거 다 하고 살았어
사실 엄마는 나한테 뭘 요구한 적이 없어 엄마가 요구하기 전에 내가 알아서 다 잘 했거든
공무원 준비도 엄마가 원해서가 아니라 내가 공무원 되고 싶다고 생각해서 했고
그러다 학교에서 우연한 기회에 상담을 받게 됐는데
그 때 묵었던 게 다 터져나왔고 상담 선생님이 내려준 처방이 엄마와의 관계를 끊어보라는 거였어
너 지금 엄마와 얘기하고 싶어? 아니지? 그러면 얘기하지 마 그게 네가 하고 싶은 거라면 그렇게 해
어차피 집 나와 살고 있었고 경제적인 것도 나 혼자 해결하고 있었으니까
나는 그 때부터 엄마에게 연락을 안 하고 집에도 가지 않았어
그리고 그 때 깨달았어 내가 자취방에 이렇게 혼자 있다가 죽어도 엄마는 날 못 찾겠구나
엄마는 내 자취방 주소도 모르잖아 내가 몇 학년인지 내 전공이 뭔지도 정확히 모르잖아
사실 처음부터 성공한 건 아니야 한 동안 연락을 안 하다보면 또 나쁜 것보다 좋은 게 더 많이 떠올라서
어물쩍 다시 연락하게 되고 엄마는 그 전과 전혀 변하지 않고 또 나를 상처줘
그럼 나는 두 배로 상처를 받아 엄마는 내가 이렇게까지 강렬하게 변하라고
변하지 않으면 당신 곁을 영원히 떠나겠다고 분명하게 선언해도 변하지 않는구나
내가 할 수 있는 건 아무 것도 없구나
나는 엄마한테 쌍욕도 해봤고 정신병원 가라고 소리도 질러봤고 연락도 정말 몇 년씩 끊어봤는데
엄마는 늘 하는 소리가 자기는 나한테 그런 말을 한 적이 없대
내가 하는 말은 다 내가 거짓으로 지어낸 말이고 설사 그런 말을 했더라도 그걸 상처로 받아들인 내 잘못이래
10년 동안 그랬거든 끊었다가 연락했다가 다시 끊었다가
지금은 다시 끊어진 상태임 연락 모두 차단한 지 2년 좀 넘음
다행히도 엄마 가족들 (외삼촌들) 이 내 편임
와삼촌들은 엄마가 어떤 사람인지 아니까 연락 안 하는 나를 이해하고
절대 나한테 그래도 엄만데 네가 이해해라 이런 압박 전혀 안 주고 나를 있는 그대로 사랑해주고 받아들여줌
그리고 내가 지금 외국 나와서 산 지 5년 됐는데 외삼촌들이 딱 두 번 엄마 성화에 못 이기고 나랑 엄마를 연결해줌
첫 번째는 삼촌이 우리 집 주소를 물어보길래 가르쳐줬더니 얼마 후에 집으로 부적이랑 무슨 팥이랑 실이 든 주머니가 날아오더라
당황해서 연락하니까 삼촌이 놀라면서 엄마가 내 생각해서 한국음식이라도 보내주려는 줄 알았대
그럴 리가... 엄마는 그냥 내가 돈 많이 벌어서 자기 먹여살릴 꿈에만 부푼 사람인데
돈 잘 벌고 성공하는 부적을 보내면서 내가 외국에서 밥은 챙겨먹고 사는지 궁금해하기나 했을까
그 부적은 갈가리 찢어서 버려버렸어
얼마 전엔 저 일을 모르는 다른 외삼촌이 나랑 엄마를 카톡으로 연결시켜준 적이 있어
내가 엄마 카톡을 차단해서 엄마는 나한테 말을 못 거니까 삼촌 통해서 한 거지
2년 만에 연락하는 엄마가 돈 얘기를 하더라 그래서 내가 지금은 학생이라 어쩔 수 없다고 이 년만 더 기다리면 졸업해서 취직할 거고
그 때 되면 돈 보내줄 테니까 걱정 말라고 나도 딱 그 얘기만 하고 다시 차단해버림
그리고 삼촌한테 이러저러했다 얘기했더니 삼촌이 정말 내 누나지만 너무한다고 그러더라
근데 예전 같았으면 삼촌이 그런 말 하면 설움 북받쳐서 미친듯이 괴로워서 울기만 했을 것 같은데
그 말 들으니까 그냥 삼촌이 너무 고마울 뿐 마음이 별로 안 아픈 거야
그냥 엄만 저렇구나 돈을 바라니까 그냥 내가 줄 수 있는 돈으로 자식으로서 최소한의 할 도리 딱 하고
그 이상 엄마 인생은 엄마 몫으로 남겨두고 난 내 갈 길을 가면 되는 구나
드디어 이제 좀 벗어난 것 같다 내 삶을 엄마한테서 분리해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음
이 과정이 결코 쉽지 않았어 나는 엄마를 끊어내면서 동생을 잃었거든
동생도 엄마가 좋은 엄마가 아닌 거 알아 우리 둘 다 상처 많이 입은 것도 알고
하지만 동생의 길은 그냥 본인이 받아들이고 참는 거였어
그래서 내가 엄마를 거부해서 결국 엄마를 거두느라 본인이 두 배로 힘들어야 했고
나는 사실 나쁜 언니야 동생이 힘든 걸 알면서도 나만 살겠다고 엄마를 떠났으니까
동생은 내가 삼촌들한테 의지하는 것도 싫어했어
그래도 우리 엄만데 언니는 왜 밖에 나가서 엄마 욕을 하고 다니느냐고
동생의 선택은 동생의 선택대로 가치 있는 거지만
난 내 선택에 후회 없어 엄마도 잃고 동생도 잃었지만
외할머니랑 어떤 외삼촌 (저 위에 언급한 외삼촌들 말고 다른 삼촌) 은 나를 싫어하지만
나는 후회 안 해 그 때 그렇게 다 끊어내지 않았다면 지금의 나는 없었을 테고
나는 지금의 나라서 마음이 훨씬 편하고 좋으니까
물론 엄마와 동생이 안 그리운 건 아냐 외국에서 혼자 사는 것도 너무 외로워
항상 나도 가족이 곁에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해
그럴 때마다 생각해 엄마한테 다시 돌아가면 너는 또 상처받을 거야
또 상처받고 싶어? 내 답은 아니, 야
세상에 모든 게 다 좋은 결과를 가져오는 선택은 없는 것 같아
부모와의 악연으로 힘들어하는 사람들 보면 그냥 그런 얘기를 해주고 싶어
부모랑 연 끊으면 너는 반드시 잃는 게 있다 그게 경제적 지원이든 정서적 안정이든 좋은 딸이라는 타이틀이든
반드시 뭔가를 잃을 거야 그런데 잃으면 얻는 것도 있을 거야 잃을 게 아니라 얻을 걸 생각했으면 좋겠어
얻는 건 뭐냐면 너의 삶, 누구에게 의지하지 않고 네 스스로 구해낸 너의 삶
그렇다고 내 동생의 선택에 대해 그 선택은 잘못됐다 비난할 생각은 없어
내 동생에게는 그 선택이 최선이고 그 애는 그 애 나름대로 평화를 찾아서 자기 삶을 잘 꾸려가고 있겠지
하지만 현재 내 안의 평화가 없다면 불행하다면 이 삶은 내 삶이 아니다 고통스럽다 느끼고 있다면
뭔가 달라져야 해 그리고 엄마는 절대 달라지지 않아
때문에 달라질 수 있고 달라져야 할 사람은 오직 자기 자신 뿐이라고 말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