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매우 유머감각이 뛰어나고 가정을 사랑하는 사람이었다고 한다.
가족끼리 별명으로 부르기도 하거나 동네 아이들과 놀기도 했다고 한다.
2) 인간성이 좋지는 않았다.
마르크스는 엥겔스로부터 재정적 지원을 많이 얻곤 했는데, 엥겔스가 자신의 아내가 죽었다는 편지를 보냈을 때도 이에 대한 답장에 돈 좀 부쳐달라는 말을 넣었다.
격분한 엥겔스는 절교를 선언했고, 마르크스의 친지들이 애걸해서야 겨우 화를 풀었다.
마르크스가 남긴 이런 부류의 수 많은 일화들을 보면,
아무래도 인간적으로는 전형적인 "머리는 더럽게 비상한데 타인의 기분이나 감정은 안중에도 없는 자기중심적이고, 냉소적이고, 재수없는 천재타입"이었던 것 같다.
3) 사치가 매우 심했고 경제 관념이 최악이었다.
마르크스가 파산에 이르기까지 수없이 행했던 사치와 향락의 파티를 했던 돈은
그가 장례식에 참여하지 않은 바로 그 아버지의 재산으로 이루어졌다.
거기다가 아버지 유산을 다 팔고 돈이 없자 역시 귀족 딸이었던 부인이 물려받은 유산(주로 예술품)까지도 다 팔아버렸다.
그래도 사치를 감당못해 파산을 했다. 경제관념은 역대 경제학 관계자 중에 최악이라고 볼 수 있다.
정작 노동자들의 단결을 외친 그가 일화, 성격등 모든 면에서 노동자적인 면이 눈꼽만큼도 없었다는 점이 재미있는 아이러니다.
4) 특히 어머니가 했다고 전해지는 말이 가관이다.
그의 어머니는 집 재산을 다 날려먹은 아들이 책을 써서 꽤 유명세를 타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그 소식을 전한 사람에게 책의 이름을 물어봤다고 한다.
그 사람은 그녀에게 그 책 이름이 자본론이라고 했고, 그 말을 듣자 마자 그의 어머니는 어이가 없다는 듯 통탄하며 "지 자본도 못 챙기고 날려먹는 놈이 뭔 자본론 같은 소리를 하고 있냐"며 한심과 분노가 섞인 목소리를 냈다고 한다.
5) 마르크스의 천재성과 반신분주의적 성향은 일찍부터 싹이 보였다.
이미 고등학교 졸업직전, 한국나이로 18세였을때 '어느 젊은이의 직업선택에 관한 고찰'이라는 논문을 썼는데,
그 내용은 젊은이는 직업선택을 할때 젊은이의 의무와 자기희생과 인류의 미래를 모두 심사숙고를 해서 결정해야 한다는 것이었고,
결국 젊은이의 직업선택이 모여 인류의 진보가 일어나고 그 직업선택에서 이상과 현실의 괴리를 극복하려는 과정 자체가 인류의 진보과정과 닮아있다는 것이었다.
당시 사회상황은 신분주의가 다 가시지 않았던 시절이라 대부분 부모의 직업을 물려받는 걸 당연히 여겼을 때였는데 마르크스는 그 어린 나이에도 이미 이에 대해 동의하지 않았다.
6) 의외로 금수저였다.
그의 아버지는 지금으로치면 돈많고 잘 나가던 로펌 변호사였다. 마르크스는 엄연히 금수저였던 것이다.
7) 노동자의 해방을 외치던 그도 집에선 하녀를 고용해서 생활했는데 그 하녀를 거의 노예로 부려먹었고
심지어는 관계까지 가져서 아이를 가지게 했지만, 그 아이를 자신의 아이로 끝내 인정하지 않았다고 한다.
역시 엥겔스가 도움을 줬다. 엥겔스가 그 아이는 사실 내 아이라고 둘러대준 후, 평범한 가정에 입양을 시켜주었다.
그 아이는 후에 외과의가 되었다
8) 이러한 마르크스의 부르주아적인 생활을 예로 들면서,
"마르크스의 공산주의 이론이라는 것은 결국에는 그런 모순된 인간의 탐욕에서 나온 것일 뿐이"라고 폄훼하려는 의도는 늘 있어왔는데,
사실 어떤 지도자나 영웅, 위인 등의 사생활적 측면이나 개인사를 두고 평가절하려는 시도를 그 정치적 반대자들이 하는 것은 세계공통의 현상이다.
9 잘 알려진대로 혈통은 유대인.
하지만 아버지 대에 기독교로 개종해서 당시 분류로는 더 이상 유대인이 아니고 유대인 사회에서도 유대인 취급을 받지 않는다
10) . "마지막으로 세상에 남길 유언이 뭔가?"라는 친구이자 동지인 엥겔스의 질문에 대한 이 양반의 대답.
"집어치워! 유언이란 살아서 충분히 말하지 못한 바보들이나 남기는 거야!"
역시 비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