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거짓말 같았다. 그가 여기에 있다니. 아무렇지 않은 듯, 나타난 그가 원망스럽기도 또 그립기도 해서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났다.
"켄, 너 진짜...."
펑펑 울어대는 나를 그가 안절부절하며 꼭 끌어안았다. 그리웠다, 따뜻한 이 체온이. 알게 모르게 묻어나는 햇살 냄새도.
"...미안해."
귓가에 들려온 목소리가 여전히 변함없어서, 나는 새삼 실감했다. 아, 정말 그가 나타났구나. 말 없이 사라졌던, 내가 사랑하는 그가.
**
"진정했어?"
대답대신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가 타 준 따뜻한 유자차, 꿀 두 스푼 넣어서. 오랫만에 마시는 그 따뜻함과 향긋함이 나를 진정시켜 주었다. 그는 내 연인, 센가 켄토.
억지로 끌려나갔던 머릿수 맞추기용 미팅에서 우연히 만난 같은 처지의 남녀가, 심지어 둘다 술을 못 하기에 몰래 빠져나가 건전하게 카페에서 음료를 마시며 많은 이야기를 나눈 후에 연인이 되는 과정은 오래 걸리지 않았다. 이상하게도 취향이 꼭 맞아서 주변에서는 다들 '이상의 커플' 이라고 입이 닳도록 말하곤 했다. 그렇게 만남을 이어가던 어느 날, 그는 홀연히 내 앞에서 사라져 버렸다. 마치 원래 없던 사람인 것처럼 흔적조차 남기지 않고 말 그대로 사라져버린 것이다.
예고도 없는 이별은 같이 쌓아온 시간이 남긴 조각들은 밤마다 내 가슴을 파고들며 상처를 입혔다.
그렇게 한참을 아파하고 괴로워 하고 있는 내 앞에, 그가 다시 나타났다.
그가 다시 나타나면 꼴도 보기 싫을거라고 생각했는데. 정말 마구마구 때려줄거라고 생각했는데, 원망과 아픔보다도 먼저 나를 움직인것은 '그리움' 이라는 감정이었다.
유자차를 천천히 홀짝이며 그를 보았다. 묻고 싶은 말이 많았다.
왜 떠났어? 어디로 사라졌던거야? 이제야 다시 나타난 이유가 뭐야? 머릿속에서 정리되지 못한 물음이 잔뜩 꼬여들었다. 무언가 꽉 막힌듯한 기분으로 입술만을 달싹일 뿐, 나는 입을 열지 못했다.혼란스러운 와중에도 가장 묻고 싶었던 말은 단 하나.
내가, 싫어졌던 거니?
하지만 나는 두려워서 입을 열 수 없었다. 어떤 대답을 하던, 듣고 싶지 않았다. 모른 척 이대로 그와 함께 있고 싶었다.
"음~날씨 좋다. 그치?"
"응."
"데이트 안 할래?"
"뭐?"
"왜 이래, 데이트 안 해본 사람처럼. 데.이.트.하자구."
갑작스런 말에 당황하는 나를 보던 그는 손을 잡아끌었다.
"그, 근데 나 지금... 울어서 추하고, 또 준비도 안 했구.."
"예쁜데."
"어?"
그는 변함없는 미소로 웃었다. 순수하고 사람 좋아하보이는, 맑은 미소. 그 햇살같은 미소가 나는 항상 부럽기도 하고 또 자랑스럽기도 했다. 네 곁에 있는 나에게, 햇살같은 네 미소를 줘. 그러면 나는 해바라기처럼 너를 바라보며 행복할테니.
"예뻐, 츄덬아."
"...그.."
"음~ 그치만 여자는 준비할 시간이 필요하겠지? 두시간이면 되겠어?"
"어?"
내 의사도 묻지 않고, 제 멋대로 데이트 결정! 이라고 말해버리는 그가 또 그 다웠다. 항상 이런 식이었지만 싫지 않았다. 뭐든지 결정하지 못하고 안절부절하는 나에게 싫은 소리를 하는 대신, 그는 마음대로 결정해버렸다. 먹고 싶은 메뉴도, 가고 싶은 곳도. 하지만 신기하게도 그가 고른 것 중 내게 맞지 않은 것이 없었다. 그렇기에 나는 그가 마음대로 결정하는 것을 좋아했다.
"그럼, 두 시간 뒤에 다시 올게. 진짜 눈부시게 예쁘게 꾸며야 해?"
그렇게 말하며 그는 내 머리를 가볍게 토닥이곤 자리에서 일어났다. 나도 모르게 그의 옷깃을 잡았다.
A. 어디 가? 라며 슬쩍 그를 붙잡는다.
B. 오늘 데이트에 대해 묻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