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이 너무 부어서 제대로 떠지지도 않았다. 머리도 지끈거렸다. 목소리를 내어 보았지만 잔뜩 쉬어 있어서 이상하기만 했다. 머리맡을 더듬어 전화기를 끄집어냈다. 오전 다섯 시. 어쩐지 밖이 어둡더라니. 하세가와는 자리에 누운 채 잠시 고민했다. 더 잘 것인가, 일어날 것인가. 출근 시간은 일곱 시. 어딘가 애매한 시간이었다.
“일어나자. 청소하자. 청소.”
욕실 청소를 하려던 것을 떠올렸다. 욕실로 들어가 청소를 시작했다. 제일 먼저 바디 제품들을 몽땅 버리기 위해 끄집어냈다. 시트러스 향으로 유명한 브랜드로 통일된 제품들을 모두 커다란 비닐봉투에 집어 넣었다. 그 다음으로는 욕조도 닦았으면 싶고, 거울도 닦았으면 싶었지만 나머지 청소는, 다음 휴가로 적당히 미루기로 했다.
대신 거울을 들여다보니, 과연 몰골이 처참했다. 자기 전 까지는 있었던 것 같은 쌍꺼풀이 사라져 있었고, 전체적으로 칙칙했다. 두 시간으로 남들 앞에 보여줄 만한 얼굴이 될 수 있을 지 궁금할 정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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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어질 때가 되었다는 것은 예상 가능한 일이었다. 그렇다면 하세가와가 아니라 상대 쪽이 나갈 것이라는 것도 예상 가능한 일이었다. 거기까지는 예상대로였다.
“아, 머리아파. 너무 울었어.”
그러나 울 것이라고는 예상하지 않았다. 냉장고에 남아있는 걸로 적당히 저녁 식사를 해결하고, 그래도 1년은 사귀었던 애인이 짐을 싸는 걸 도와주는 동안에는 아무렇지 않았기 때문이다. 문제는 그 다음이었다. 기분 탓인지 어쩐지 썰렁하고 넓어진 집안이 싫어 텔레비전의 소리를 평소보다 조금 더 크게 해 놓고 샤워를 하러 들어갔었다.
시트러스 향이 강한 걸로 유명한 모 브랜드의 샴푸 린스 탓이었다. 바디클렌저도 그 계열이었다. 하세가와라면 고르지 않을 물건이었다. 하지만 애인, 이제는 전 애인이 되어버린 그는 시트러스 향을 좋아했고, 그게 잘 어울렸다. 그래서 별 말 없이 쓰던 것이 이제는 시트러스 향을 좋아한다고 말할 수 있을 정도가 되었다. 시트러스 향이 좋았는지, 시트러스 향이 나는 그 사람이 좋았는지, 아니면 좋아하는 사람과 같이 살면서 같은 것을 쓴다는 것이 좋았는지는 정확하지 않았다.
아무튼, 하세가와는 우울함을 샤워로 씻어내려 했다. 그게 문제였다. 아무래도 당분간은 시트러스 향의 바디 제품을 쓸 일은 없을 것 같았다. 머리 감으려다 말고 욕실 바닥에 주저앉아서 한바탕 울기까지 했다. 손바닥 가득했던 샴푸는 샤워기의 물줄기를 타고 배수구로 사라지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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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 샴푸 바꿨어?”
“바꾸긴 바꿨는데. 어떻게 안 거야?”
“너한테서 나던 오렌지 냄새가 안 나서.”
미키가 하세가와의 머리에 대고 킁킁거렸다.
“징그러. 저리 가.”
“취향의 갑작스러운 변화에 대해선 안 물어 보는 게 좋은 느낌?”
“……어.”
어쩐지 목이 메었다.
“그러니까 남의 취향 너무 따라가지 마. 안 좋아하는 건 안 좋아한다고 해도 되잖아.”
네가 할 말이냐, 라고 하세가와가 속으로만 중얼거렸다. 거절 못 해서 고생한 에피소드가 제일 많은 주제에. 라고 하는 것도 포기했다. 미키는 쓸데없이 손이 매웠다. 딴에는 가벼운 쯧코미라면서 툭 치고 지나가지만, 꽤 아팠다. 매를 벌 필요는 없다.
“네가 무슨 연애를 하든 상관은 없는데, ……아니야. 타카야마 불러서 술이나 사달라고 하지?”
“걔도 오렌지 향기 나잖아. 싫어, 당분간은. 똑같은 거 쓴단 말이야. 하도 물어봐서 가르쳐줬거든. 그래서 지금은, 좀 …… 그냥, 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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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음이의어도 된다고 했으니까 同化로 했어. 서로 같아지는 그 동화.
그래놓고서 헤어졌습니다. 異化에 가까운 이야기가 되었지만, 헤어져야 새 연애를 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