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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담 키스마이) 오래된 연인을 위한 세레나데♪츄테배 레스게임 와타편_배드 루트 정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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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7.28 23: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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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저히 안 되겠어. 헤어질래."

내 폭탄 발언에 친구가 깜짝 놀라 마시고 있던 아메리카노를 뱉었다. 아 드럽게 진짜! 나는 화를 내며 곱게 접힌 손수건을 꺼내들었다가 다시 놓았다.
그러고보니 이것도 그가 다 다려준거네, 안 쓸거야. 안 쓸거라구!

"..커흑, 미..미안. 야, 진짜 괜찮겠어? 그만한 사람 없는데."
"뭐래? 세상 반이 남자라는데 그만한 남자 하나 못 찾을까봐?
그리고, 네가 남이니까 그렇게 보이는거지 실제로 같이 있으면 기빨린다."
"그래 뭐, 네가 그러기로 했다면 상관없지만. 후회 안 하겠어? 내가 보기엔 백퍼 후회할 각인데."
"연애 3년이면 오래 했지 뭐, 이젠 딱히 설렘도 없고. 모르겠다."


그러네, 어느새 3년이다. 솔직히 그가 싫냐고 한다면 그건 아닌데, 그렇다고 좋냐고 한다면 글쎄, 라고 답하는 최근의 나였다.
영원한 사랑따위 없다는 말에 '우리가 그 전례를 깨부숴 주겠어!' 라고 당당히 선언하고 시작했는데, 세상 말 틀린거 하나 없구나아.

객관적으로 그는 잘생겼다. 키도 크고, 예의를 중시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근데, 너 밥 혼자 해 먹고 살수 있겠어?"
"...큭, 정곡을..."

요리를 잘한다. 그냥 잘하는 정도가 아니라, 정말 수준급으로 잘 한다. 근 몇년간 그의 손맛에 길들여져서 마음이 약해지는 대목이기도 했다.

"그래도, 그거땜에 마음도 없는 사람 잡고있기도 미안하니까. 나도 최소한의 양심은 있다 뭐."

친구가 어휴, 그래 잘났다. 라고 말하며 핸드폰을 꺼내들고는, 흐뭇한 미소로 어쩔줄을 몰랐다. 오래된 소꿉친구랑 사귀기 시작한 친구는 깨볶는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그 모습이 왠지 얄미워서 눈 앞에 놓인 케이크를 포크로 푹푹, 쑤시다가 옷에 떨어뜨리고 말았다.
 
"아, 새 옷인데! 또 옷 지저분하게 하고 왔다고 와타한테 혼나겠..."
"...헤어질거라며."
"그럴거라니까, 진짜로!"

왠지 히죽거리는 친구의 표정을 보니 괜스레 짜증이 났다. 그래, 오늘은 꼭 헤어지자고 말을 하는거야! 이번엔 정말 물릴 생각도 없다, 오늘 꼭!


**

집이 가까워질수록 괜히 발걸음이 느려졌다. 들어가서 헤어지자고 말을 할 참인데, 대체 어떻게 말을 해야 하는거지? 상처 안 주고 헤어지는 방법이 없다지만, 그래도 최대한 상처 덜 주고 헤어지고 싶은데. 

"...크게 잘못한게 있는것도 아닌데 말야."

이럴 때마다 참 서글퍼진다. 그는 잘못한게 하나도 없다. 그냥, 처음부터 주욱 항상 그대로였는데 누군가의 마음이 식어서, 그래서 긴 시간 함께 해온 인연을 끊는다는 것은 정말 잔인한 일이다. 만약 반대 상황이었으면 나는 아마 한동안 아무것도 못 할 정도로 마음의 상처를 받았을 것이다.
그럼에도, 이렇게 다 끝난 인연을 붙잡고 있는 미련한 짓은 하지 않는게 더 낫다는게 뭔가 아이러니 했다.

"..츄덬아."
"왁, 깜짝이야! 인기척좀 해!"

갑자기 튀어나온 그 때문에 나는 깜짝 놀라 비명을 질렀다. 그는 픽, 가볍게 웃더니 손을 내밀었다. 나는 또 엉겁결에 그 손을 잡았다.
헤어지기로 했잖아, 츄덬아. 지금 말해. 말하라고! 마음속에선 그렇게 시끄럽게 떠들고 있었지만 나는 쉽게 입을 뗄 수가 없었다.

"저기..오늘..."
"오늘 저녁은 고기 감자 조림이야."
"앗싸, 신난다!!! 와타가 만든 고기감자조림 진짜 맛있어!"

헉, 나도 모르게 하이텐션이 되었다. 그치만, 그치만 정말로 와타루가 만든 고기감자조림은 세계 최고라고 해도 단언이 아닐 정도인걸.
엄마한텐 미안한 말이지만 엄마가 만든 것보다 훨씬 맛있었다.

"요새 왠지 기운이 없어보여서."
"어? 아....응."

그 말에 괜히 양심이 콕콕 찔렸다. 그는 여전히 변함이 없는데, 나만 이렇게...... 

손을 잡고 어느새 맨션 앞에 도착했다. 자연스럽게 그가 꺼내든 맨션 열쇠에는 나와 똑같은 모양의 스트랩이 걸려있었다. 첫 데이트날, 같이 샀던 분홍색 돌고래 모양의 스트랩. 남자가 무슨 분홍색이냐며 투덜거리던 그는 어느새 자연스럽게 스트랩을 사용하고 있었다.

"뭐해, 안 들어가?"
"어? 어,어어.."

멍하니 그 스트랩을 바라보던 내 팔을 가볍게 끌어 집 안으로 들여보낸 그는 바로 손을 놓고 주방으로 향했다. 손이 놓아지는 그 순간이 왠지 조금 안타깝게 느껴져서, 나는 고개를 붕붕 저었다. 안돼 안돼. 마음 약해지지 말자, 오늘 나는 3년 사귄 이 남자와 헤어지는거야.

왠지 현관에서 우물쭈물 하고 있자니 부엌에서 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밥, 금방 될 테니까 손 씻고 와."
"..."


B. 우선 밥부터 먹고 생각하자.



...그래. 일단은 밥부터 먹고 생각하자. 금강산도 식후경이라고, 거사 치루려면 뱃속이 든든해야 해. 
나는 묵묵히 화장실로 향했다. 솨아아, 세면대에서 흐르는 물 소리가 왠지 마음을 진정시켜 주었다. 

"들어온김에 옷도 갈아입고 나가야지, 괜히 또 잔소리 들을라."

케이크가 묻은 옷을 얼른 빨래바구니에 던져버리고 편한 옷으로 갈아입으니 한층 더 마음이 편했다. 역시 몸이 편해야 마음도 편하다는게 맞다니까.
그러는 사이 어느새 온 집안에는 맛있는 냄새가 가득했다. 벌써부터 군침이 돌았다.

"으..마음약해지게 만드는 냄새네. 그치만 본분을 잊으면 안돼!"

불끈, 주먹을 한번 쥐고 결전에 나서는 장군마냥 비장한 각오를 하고 테이블에 앉았다.
이미 차려진 정갈한 밑반찬들이 자꾸만 식욕을 자극했다. 아, 저거 저번에 만들었던 양파 장아찌네. 맛이 들었나보다. 몰래 하나 집어먹다가 '츄덬아, 밥이랑 같이 먹어' 라는 단호한 그의 말에 깨갱 하고 말았다.

"오래 기다리셨습니다~."
"와아!"

드디어 메인 메뉴가 나왔다. 와타표 고기감자조림! 포슬포슬 부서지는 감자, 적당한 기름기의 국물. 촉촉해보이는 고기까지. 퍼펙트하다.
방금 한 따끈따끈한 쌀밥과 함께 크게 한 입 넣었다. 천국!

"아, 진짜 맛있어... 미쳤어 진짜.."

내 말에 그는 푸핫, 하고 웃었다. 여자애가 입이 되게 험하네. 웃음기 가득한 말투로 그는 그렇게 말했다.

"양파 장아찌도 잘 됐더라. 밥이랑 먹어봐."
"응응."

아삭하고 새콤하고 짭조롬한 말로는 설명 못할 천상의 맛이었다. 지금 당장은 헤어짐이고 뭐고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괜히 무거운 생각 해서 좋은 밥 먹고 체하지 말고 맘 편히 먹고 생각하자!

"..있잖아."
"응?"

아, 진짜 맛있다. 하...... 진짜, 말로 설명이 안 된다. 그리고 천국을 떠도는 내 귓가에 들려온 그의 말은 의외의 것이었다.

"우리, 시간을 좀 가질까."
"...어?"

들고 있던 수저를 내려놓았다. 갑자기? 아니 잠깐. 내가 먼저 말 하려고 했는데 왜..?

"아, 갑자기 이런 말 해서 미안해."

갑자기 식욕이 싹 가셨다. 분명히 내가 먼저 하려고 했던 말이고, 하기로 한 말이었는데 직접 듣고 보니 다가오는 충격이 장난이 아니었다.

"지금 당장 헤어지자는 말은 아니고, 그냥. 너도 나도 지친 것 같아서, 잠깐만 시간을 갖자는 얘기야.
너도 느끼고 있었지? 우리, 예전같지 않다는거."
"...응."
"그러니까, 가끔은 서로 떨어져서 냉정하게 생각할 시간이 필요하다고 생각해. 조금 잔인한 얘기지만.."
"...."
"그...집은.."

그는 그렇게 말하면서 묘한 눈빛으로 집을 한 바퀴 훑어보았다. 2년 조금 넘은 , 둘이 함께 지냈던 조그마한 집. 

"..내가, 다른 곳에 가 있을게."
"응."
"울지 말고."
"어?"

아, 나 울고 있었구나. 어쩐지 눈가가 뜨끈뜨끈하더라. 그는 가느다랗고 긴 손가락을 내 눈물을 닦아주었다. 내가 좋아하던, 긴 손가락.
하얗고 예뻐서 '내 손이랑 바꿔!' 라고 하면 '그럼 네가 집안일 다 할거야?' 라고 장난스레 받아치곤 했던, 와타루의 손가락.

"미안해."

그 말이, 여지껏 들은 그 어떤 말보다도 더 가슴아팠다.


**


다음 날 아침, 그는 조용히 사라졌다. 자신의 짐을 모두 챙겨서, 정말 조용히 떠났다. 깨끗하게 개어진 이불 외에는 그가 있었던 흔적이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마치 원래 아무도 없었던 것 처럼, 그렇게 자연스럽게 그는 사라졌다.


"...가버렸네."

왠지 마음이 허했다. 천천히 부엌으로 나오니, 어제 만들었던 고기감자조림과 밑반찬 몇 가지가 차려진 아침상이 보였다. 모락모락 김이 나는 걸 보면, 차린지 얼마 안 된 모양이었다. 그래봐야 그는 없지만.

"......."

바스락, 그 옆에 조용히 놓여있던 작은 쪽지를 집어들었다.


[츄덬에게.
혹시 식으면 전자레인지에 30초정도, 비닐 랩 씌우고 돌릴 것.
그냥 돌리면 고기에 남은 수분때문에 찌꺼기가 튈 수 있으니 꼭, 랩 씌워서 돌려야 해.]

"......누가 이런것도 모를까봐."

픽, 웃으며 테이블에 앉았다. 가지런히 놓여진 젓가락도, 그 밑에 받쳐진 당근 모양의 젓가락 받침도. 전부 둘이서 고른 것이었다.

"잘 먹겠습니다~"

조용한 집안에, 들을 사람도 없는데 나는 괜스레 큰 소리로 그렇게 말하고 젓가락을 집어들었다.

"..맛있다."

언제나 변함 없는 맛이었다. 그러고보니 요리할때의 그 옆모습, 내가 참 좋아했었는데. '그러다가 손 베이는거 아니야?' 라며 손을 떨던 그를 놀리곤 했었네. 그는 단 한번도 손이 베인 적이 없었지만 말이지.

뭔가 꽉 막힌듯한 기분으로 나는 그가 마지막으로 차린 아침상을 깨끗이 비웠다. 체하지 않도록 천천히, 꼭꼭 씹어서, 그가 남긴 온기까지 전부 깨끗하게 먹어치웠다.

"아, 설거지 귀찮은데. 그래도 1인분이라 금방 끝나겠네."

그렇게 중얼거리며 자리에서 일어나 싱크대로 향했다. 그가 자주 두르던 남색 앞치마도 보이지 않았다.

"그 와중에 또 앞치마는 챙겨가셨구만... 어?"

내 눈에 아까 보지 못했던 것이 들어왔다. 그의 흔적이다.

내가 본 것은...



B. 냉장고에 붙은 다른 쪽지


[츄덬에게.
냉장고 안에 있는 반찬들은 3일정도만 먹어.
그 이후엔 맛이 변하고 상해서 먹을 수 없을테니, 아깝다고 욕심내지 말것.
밥은 조금씩 소분해서 냉동실에 넣어뒀으니 아침에 바쁘다고 빼먹고 가지 말것.
귀찮아도 밥은 꼬박꼬박 챙겨 먹어.]

".........씨.........."

안 울려고 했는데, 그럴려고 했는데......... 눈 앞이 자꾸 흐려졌다. 떠나는 주제에 흔적을 왜이렇게 많이 남겨 놓고 가는거야. 떠나면서도 그는 내 걱정 뿐이었다. 혹시나 아침 귀찮다고 거를까봐, 정성스레 차려준 마지막 아침밥. 냉장고에 가지런히 정리되어 있는 남은 반찬들과, 소분해서 냉동시켜둔 밥.
차곡차곡, 가지런하게 정리되어있는 음식들이, 자꾸만 그걸 조용히 정리했을 그의 모습을 그려내고 있었다. 그의 찡그린 표정과, 가끔 보여준 따뜻한 미소가 오버랩되어 자꾸만 자꾸만 눈물이 났다.


그렇구나, 우리 헤어진거구나.

나는, 그 자리에서 참을 새도 없이 울었다. 아무도 없는 고요한 집안에, 유일하게 들리는 울음소리가 메아리쳐 내게 다시 돌아왔다.


**



"아....... 기운없다."

아침에 챙겨줄 사람이 없어서, 물론 내가 게으른 탓이 더 크지만... 아침에 급하게 나오느라고 미처 아침밥을 챙기지 못했는데 그게 이렇게 반향이 클 줄이야. 나는 출근해서 좀비처럼 테이블에 턱을 괴고 한숨을 푹 쉬었다.

아아 배고파. 헤어짐의 슬픔보다 배고픔이 먼저라니. 인간은 왜 밥을 먹어야만 하는걸까.

"어? 츄덬씨 왜이렇게 기운이 없어요? 무슨 일 있어요?"

지나가던 팀장이 내게 말을 걸었다.  후지가야 타이스케, 일명 '가야상'. 말끔한 외모에 다정한 배려심까지, 사내 여자 사원들의 마음을 설레이게 하는 장본인이었다. 

"그냥.....아침을 못 먹어서 배가 고프네요."
"그럼, 이거 먹어요."

그는 그렇게 말하며 내 앞에 샌드위치와 커피를 내려놓았다. 회사 앞에서 파는, 조금 비싼 샌드위치였다. 유기농 재료를 넣었다나 뭐라나 하면서 빵빵하게 광고를 했던 그 샌드위치. 나도 모르게 군침이 도는걸 느꼈으나 이내 이성을 찾고 대답했다.

"아, 그치만 그럼 팀장님은....."
"응? 난 괜찮아요. 밥 먹고 왔는데도 뭔가 출출해서 이것저것 사들고 온 것 뿐이니까."
"그래도.."
"나는, 이거 먹으면 돼요. 아, 혹시 다이어트 중이에요?"
"아뇨, 아뇨. 그냥.. 죄송해서요."

그 말에 그는 내 어깨를 가볍게 두들기고는, 특유의 차분한 목소리로 장난스럽게 속삭였다.

"여기 말고, 탕비실 가서 몰래 먹어요. 여기서 먹으면 배고픈 다른 팀장님이 화 낼테니까."
"네, 네.. 감사합니다."

나도 모르게 설레었다. 긴 연애에 익숙해져서, 설렘따윈 이제 없을 줄 알았는데. 정말 오랫만에 느껴보는 설레임이었다.
그리고, 그가 준 샌드위치는...


"장난 아니더라, 진짜 비싼 값을 하던데?"
"아니 것보다 너.. 진짜 헤어진거야?"
"뭐어..... 그렇지 않을까? 시간을 두자, 고는 했지만 그 말 그대로 믿는 바보가 어딨어."

내 말에 친구는 짐짓 심각한 표정이 되었다. 

"너..괜찮은거야?"
"응? 보다시피. 솔직히 첫날은 좀 슬펐는데, 아침에 보니까 슬픈것보다 배고픈게 먼저 느껴지더라. 하하."

달그락 달그락, 괜스레 아이스티의 얼음을 휘저으며 말했다. 친구는 여전히 심각한 표정이었고, 나는 의외로 덤덤한 내 모습에 조금은 만족 중이었다.

"근데, 좀... 오랫만에 설레더라. 그런 취급."
"헐."
"야야, 그 표정 뭐냐? 어차피 프리한 몸인데 뭐 어때!"
"야, 너 회복이 너무 빠른거 아니냐? 아무리 내 친구라지만 정말 무섭다 무서워."

그녀는 절레절레, 고개를 저었다. 하이고, 그러시겠지. 본인 연애사업이 잘 되다 못해 아주 풍년이라 이거지?

"근데 뭐..."
"?"
"정말, 잘 해볼 생각이 있어? 그..."
"가야상?"
"응. 그 사람이랑."
"솔직히 말해도 되냐."
"어."
"솔직히 베리땡큐지. 그정도면 야, 평생 업고 다닌다 내가."

농담이 아니라, 정말 베리땡큐인 남자다. 다정하고, 능력있고, 잘생기고, 세심하고 심지어는 돈도 많은 남자다. 수많은 여성 사원들이 끊임없이 들이댔음에도 불구하고 더러운 소문 하나 없는, 그런 남자다. 그 주변에서 한번도 싫은 소리나 나쁜 소리가 나와본적이 없는 무적의 남자.
아마 이게 드라마라면 그는 남자 주인공이었을 것이다. 돈도 많고, 능력도 좋고, 잘생기고 착하기까지 한 백마탄 왕자님.

"그정도야?"
"어. 우리 회사 여직원들의 꿈과 로망이신 분이다."
"그렇게 말하니까 괜히 나도 궁금해지네.."
"떽, 남친 있으신분이 어딜! 걔 그러다가 운다 너?"
"울긴 뭘 울어, 그런걸로 울거면 애저녁에 떨어져나갔지."
"아이고, 또 남친 얘기 나왔다고 광대 폭발하는거 봐라."
"시끄러!"

시답지 않은 대화를 하면서 나는 평소처럼 웃었다. 어느덧 그가 없는 7일째가 지나고 있었다.


"다녀왔습니다아~"

아무도 없는 거 뻔히 알면서 나는 버릇처럼 인사를 했다. 그가 없는데도 '외출 후에는 손 씻어!' 라는 말이 들리는 것 같아서 쪼르르 달려가 손을 씻었다.
한동안은 슬펐다. 우리가 함께 쌓아온 3년의 시간은 결코 짧은 것이 아니었다. 주변에선 3년이나 사귀었다는 말에 '그렇게 오래?' 라고 놀라곤 했다.
내게 있어 그와 함께한 3년은 그렇게 길지 않았는데, 왜 주변에선 그렇게 오래 만났냐며 놀라워 했는지, 그 당시의 나는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러나 헤어지고 나서 알았다. 3년의 추억은, 정말 끝도 없이 계속 흘러나와서 날 자꾸만 울게 만들었다.

일요일 낮의 햇빛, 매일 하는 뉴스, 지나가는 길에 보았던 판매 광고까지. 뭐 하나 그가 새겨져있지 않은 것이 없었다.
그럼 난 또 한참을 울다가, 또 시간이 지나 침착해지고. 다시 또 울고, 또 다시 멀쩡해지고를 며칠 반복했다.
7일이나 지났는데도, 가끔 눈물이 돌 때가 있었다. 하지만 첫째날만큼 울진 않았다. 

"..익숙해지는구나. 금방"

조금은 자조적인 말투로 말했다. 가끔 그가 생각나는 것 말고는 힘든 일은 없었다. 하지만 단 하나.

"........아 진짜 맛없어......."

계란프라이 하나도 간신히 하는 주제에, 그동안 정성스런 그 손맛에 길들여진 입맛은 다시 내려올 줄을 몰랐다. 차라리 입맛이라도 별로였다면 좋았을것을. 이미 그 맛에 길들여진 나에게 인스턴트 식품은 너무나 자극적이었고, 직접 만든 요리는 너무나 처참했다.

"이상하다. 요리책 보고 그대로 따라하는데 왜 맛이 없지?"

언젠가 라면을 끓이다가 물을 잘못 재어 한강을 만들자 그는 '절망스러울 정도의 손재주' 라며 나를 놀리곤 했다. 그 말에 나는 '그러는 와타루는,' 이라고 말하려다가 내가 그보다 잘 할 수 있는게 뭔지 한참을 생각하느라고 말을 잇지 못했던 걸로 기억한다. 아아, 기억을 해내도 이런 비참한 일을.
나는 고개를 젓고, 여전히 맛 없는 오늘의 내 요리를 입에 쑤셔넣었다.


다음 날, 여전히 맛 없는 요리에 기운을 잃어 끙끙거리며 탕비실로 향했다. 빈 속을 커피로 달래보려고 하는데, 그가 나타났다.

"오늘도, 아침 못 먹었어요?"
"아, 팀장님..."
"아침, 중요하대요. 점심이나 저녁보다도 더."
"알죠.. 아는데..."

제 손재주가 절망적이어서 차마 아침에 먹을 수가 없어요, 라는 대답은 못하고 우물쭈물 거리자 눈 앞에 작은 도시락이 놓였다.

"이거 줄게요."
"어, 이게 뭐에요?"
"츄덬씨처럼 아침 못 먹고 출근하는 사람을 위한 도시락."
"네?"

그는 여전히 부드러운 미소를 짓고 내게 조그맣게 말했다.

"직접 만든거라서, 맛은 없을지도 모르지만요."

그 말에 나는 또 설레었다. 나를 위해서 누군가 만들어준 도시락, 오랫만이다. 하지만 이걸 왜 나한테..?
설마, 하는 마음에 그를 보고, 또 다시 도시락을 보고. 둘을 번갈아보고 아무 말도 하지 못하자 그는 또 웃었다.

"빈 도시락은, 나중에 돌려주세요."

그 말을 남기고 천천히 돌아서는 그를 보며 나는 왠지 모를 설레임과, 기대감을 느꼈다.



B. 아니다, 그냥 내 착각이겠지. 

..헤어진지 얼마나 됐다고 벌써. 나는 고개를 저었다. 정신차려 츄덬아. 팀장님이 주변에 호의 베푸는건 하루이틀 일도 아닌데 왜 멋대로 설레고 그러는거야. 가볍게 눈인사를 하고 그는 탕비실을 빠져나갔다.

나는 그 자리에 얌전히 앉아서 도시락 뚜껑을 열었다. 아기자기하고 조그맣게 담긴 반찬들이 보였다. 알록달록 예쁘고 정갈하게 담긴 반찬들은 먹기가 아까울 정도로 예뻤다.

"헤에, 팀장님은 이런거 드시는구나."

그렇게 중얼거리며 계란말이를 입에 넣었다. 맛있었다. 그 스펙에 요리까지 잘 하는건, 반칙 아닌가 싶다가도 왠지 팀장님이니까 납득이 되었다. 
그 날은, 오랫만에 맛있는 아침을 든든하게 먹어서인지 가뿐하게 일에 집중할 수 있었다.

그런데 이거, 몰래 줘야겠지? 눈에 띄는데서 주면 괜히 소문 날 수도 있으니까. 나는 빈 도시락통을 보며 언제 어떻게 이것을 건네줘야 할지 고민을 하며 퇴근 준비를 했다. 일단 먹은거 그대로 주긴 민망하니까 집에가서 설거지 하고 다음날 줘야겠다는 결론에 다다른 후에는, 이미 다른 사람들은 퇴근하고 없었다.


"으음~"

회사를 나오며 기지개를 쭉 폈다. 오랫만에 일에 집중해서 뿌듯한 하루였다. 뱃속이 든든하니까 이렇게 일이 잘 되는구나.
오늘 열심히 한 나를 위해서, 나는 내게 조그만 상을 주기로 했다.


"어서오세요~"

킁킁, 달콤한 냄새가 가득했다. 아아, 여긴 천국이야! 회사 근처에 새로 생긴 디저트가게에 큰 맘 먹고 발을 들였다. 생긴지 얼마 안 된 가게이고 비싼데도 불구하고 손님들로 북적였다. 여기 쇼트케이크가 그렇게 맛있다는 소문이 자자했기 때문이었다.

황홀한 비주얼에 달콤한 냄새가 가득한 쇼케이스를 보며 나는 행복한 고민에 빠졌다. 뭘 골라야 좋을지 전혀 모르겠다. 그냥 다 맛있어 보이는걸!
한참을 고민하고 있는데 누군가 다가왔다.

"츄덬씨."
"어? 아, 팀장님!"
"여기서 다 만나네요, 케이크 사러 온거에요?"
"네. 오랫만에 달콤한게 먹고 싶어서요. 근데 다 맛있어 보여서 뭘 골라야 할지를 모르겠네요."

내 말에 그는 으음, 하고 잠깐 고민을 하는 듯 하더니 톡톡, 어떤 케이크를 가르켰다.

"여기, 이 티라미수 굉장히 맛있어요."
"아, 티라미수.."

왠지 미묘한 표정을 한 내게 팀장님은 '티라미수 안 좋아하세요?' 라고 되물었다. 

"아뇨, 안 좋아하는 건 아닌데..."
"몽블랑."

낯익은 목소리가 들려 고개를 들었다.

"...와타..."
"몽블랑 드세요, 손님."

그는 차분하게 말했다. 여기서 일했었구나, 난 아무것도 몰랐네 정말. 그저 요리 관련 일을 하고 있다고만 알고 있었는데.

"그럼, 두개 다 주세요."
"..감사합니다."

그는 사무적으로 인사했다. 케이크를 사 들고 나오는 순간까지, 나는 그에게서 눈을 떼지 못했다. 오랫만에 보는 와타루는, 왠지 조금 마른 듯 했다.
포장을 하면서 슬쩍 닿은 손길에, 나는 눈물이 날 것 같았다. 내가 좋아하던 와타루의 손가락이네. 저 손가락으로, 내 머리를 다정하게 쓸어넘겨주었는데. 다 잊혀져 가는데, 우연처럼 나타난 그 모습에 나는 목이 꽉 막혀옴을 느꼈다.

기억하고 있었구나, 내가 못 먹는거. 

답답해진 마음으로 가게를 나오자 옆에 있던 팀장님이 조심스레 말을 꺼냈다.

"티라미수, 별로 안 좋아하세요?"
"아, 아뇨. 그건 아니고, 제가 가루같은거 먹다가 사례들린 적이 있어서..
코코아가루가 뿌려진 티라미수는 조금, 힘드네요."
"아, 미안해요. 난 그것도 모르고..."
"아니, 아니에요. 딱히 자랑할거리도 아니라서 말한적도 없는걸요."

그렇게 말하면서 나는 같이 산 티라미수를 꺼냈다. 와타루의 손길이 담긴 케이크. 나는 케이크를 눈으로 한번 담고, 그에게 내밀었다.

"이거, 변변치 않지만."
"저 주시는건가요?"
"네, 아침에 도시락도 얻어먹었구요.. 아, 도시락은 깨끗하게 닦아서 내일 돌려드릴게요."
"이유가 있는 선물은 거절할수가 없네요, 네 맛있게 잘 먹을게요."

이걸로 됐어. 이걸로, 쓸데없는 기대는 끊어내자. 나는 그렇게 중얼거렸다. 귓가에 '몽블랑,' 이라는 와타루의 목소리가 자꾸만 남아 열기를 새겼다.

집에 와서 뜯은 몽블랑은, 와타루의 맛이 났다. 그 낯익은 맛에 나는 또 울었다. 헤어지고 나서 한동안은 괜찮은 줄 알았는데, 이렇게 직접 보니까 가슴이 울렁거렸다. 묘하게 조금 마른듯한 모습도, 왠지 무미건조한 말투도, 여전히 하얗고 긴- 예쁜 손가락도, 마치 영화의 한 장면처럼 내 눈에 선명하게 자꾸만 스쳐갔다.

**

잠시 와타루를 본 것 만으로도 이렇게 일렁이는 마음이 미웠다. 그렇게 모질게 끊어내길 원했으면서, 먼저 그를 떠나기를 바랐으면서, 이제와서.

문득 핸드폰을 꺼냈다. 단축번호 1번을 누르면, 와타루에게 연결될 것이다. 바빠서, 라는 핑계로 여전히 지우지 못하고 있는 그 번호가, 버튼 하나로 연락이 되기도 하고, 혹은 지워지기도 할 것이다.

손가락이 계속, 1번 버튼 위에서 어쩔 줄을 몰랐다. 웃기지도 않는 일이다. 헤어진 연인이, 여전히 전 애인의 전화번호를 단축키로 등록해 둔다니. 이제와서 다시 연락해보고 싶다고 생각하다니. 하지만 나는, 그 웃기지도 않는 상황에도 갈팡질팡하고 있다. 

"..괜찮을 줄 알았는데, 이게 뭐야..."

핸드폰을 든 손이 떨렸다. 

"...보고싶어."

새어나온 말에 푹, 얼굴을 묻었다. 바보같은 얘기다. 문득 얼굴을 묻고 생각했다.

내가 왜 헤어지고 싶어했더라? 마음이 식어서, 였던가? 

"식긴 뭐가, 식었다는거야...... 바보 아냐?"

나는 결국, 떼를 쓴 것 뿐이었다. 날 더 봐줘, 날 더 사랑해줘. 그렇게 말하는 대신, 괜히 심통나서 '이제 너한테는 설레지 않아!' 라면서, 그렇게 하면 혹여나 그가 날 더 봐 줄까봐, 그랬던 것이다. 언제나 변함이 없는 그의 모습에, 나만 더 좋아하는 것 같다고 그렇게 생각해서.


그때, 전화가 울렸다.

"..........하......"

와타루였다.



B. 받지 않는다. 

전화를 받을 수가 없었다. 

전화를 받으면, 받는 순간 '보고싶어' 라고 말해 버릴 것만 같았다. 다정한 네 목소리를 들으면, 그 순간 목놓아 울어버릴 것만 같았다.

웅웅웅, 계속 울리는 진동을 무시하며 나는 서럽게 울었다.
전화를 받고, 네 목소리를 듣고, 보고싶어, 만나고 싶어, 그렇게 말할 수 없는 내가 너무 슬펐다.

전화는 몇번 더 울리더니 잠잠해졌다.

"미안해, 너무 바보같아서........."

반짝, 핸드폰이 한번 빛났다. 문자가 온 모양이었다.

[열쇠 놓고 간 것 같아서 연락했어.
나중에 우체통에 넣어두고 갈게.]

그 말에 주머니를 뒤져보았다. 없다, 그가 남기고 간 분홍색 돌고래 스트랩이.
유일하게 남아있던 , 그의 흔적이.



*


핸드폰을 한참 바라보았다.
그냥, 딱 한번만. 딱 한번만 실수인 척 전화를 거는거야.
그래서, 실수인척 안부를 묻자.
응, 잘 지내- 라는 대답을 들으면, 그대로 만족하고 전화를 끊는거야.

용기를 내어 단축 번호를 눌렀다.
그리고 들려온 소리는..

[지금 거신 번호는 없는 번호이거나.......]

"..하..."

웃음이 났다. 아직, 번호를 바꾸지 않았을리가 없지. 그래. 그렇구나. 

"츄덬씨."
"..아,네."
"뭐 해요? 이제 곧 영화 시작인데."

팝콘과 콜라를 든 그가 말했다. 나는, 그가 아닌 그... 그러니까 팀장님과 함께 영화를 보러 왔다.
그런 주제에, 여전히 마음 정리도 못 하고 갈팡질팡 하고 있는 웃기지도 않는, 그게 나다.

"아뇨, 아무것도 아니에요. 들어가요."
"네."

아무것도 모르는 그는 밝게 웃었다.

미안해요, 나는 그렇게 혼자 중얼거리며 비겁하게 눈을 감았다. 핸드폰은 삐리릭, 하는 소리와 함께 꺼졌다.


bad e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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