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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담 키스마이) 오래된 연인을 위한 세레나데♪츄테배 레스게임 와타편_퍼펙트 루트 정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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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7.28 2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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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저히 안 되겠어. 헤어질래."

내 폭탄 발언에 친구가 깜짝 놀라 마시고 있던 아메리카노를 뱉었다. 아 드럽게 진짜! 나는 화를 내며 곱게 접힌 손수건을 꺼내들었다가 다시 놓았다.
그러고보니 이것도 그가 다 다려준거네, 안 쓸거야. 안 쓸거라구!

"..커흑, 미..미안. 야, 진짜 괜찮겠어? 그만한 사람 없는데."
"뭐래? 세상 반이 남자라는데 그만한 남자 하나 못 찾을까봐?
그리고, 네가 남이니까 그렇게 보이는거지 실제로 같이 있으면 기빨린다."
"그래 뭐, 네가 그러기로 했다면 상관없지만. 후회 안 하겠어? 내가 보기엔 백퍼 후회할 각인데."
"연애 3년이면 오래 했지 뭐, 이젠 딱히 설렘도 없고. 모르겠다."


그러네, 어느새 3년이다. 솔직히 그가 싫냐고 한다면 그건 아닌데, 그렇다고 좋냐고 한다면 글쎄, 라고 답하는 최근의 나였다.
영원한 사랑따위 없다는 말에 '우리가 그 전례를 깨부숴 주겠어!' 라고 당당히 선언하고 시작했는데, 세상 말 틀린거 하나 없구나아.

객관적으로 그는 잘생겼다. 키도 크고, 예의를 중시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근데, 너 밥 혼자 해 먹고 살수 있겠어?"
"...큭, 정곡을..."

요리를 잘한다. 그냥 잘하는 정도가 아니라, 정말 수준급으로 잘 한다. 근 몇년간 그의 손맛에 길들여져서 마음이 약해지는 대목이기도 했다.

"그래도, 그거땜에 마음도 없는 사람 잡고있기도 미안하니까. 나도 최소한의 양심은 있다 뭐."

친구가 어휴, 그래 잘났다. 라고 말하며 핸드폰을 꺼내들고는, 흐뭇한 미소로 어쩔줄을 몰랐다. 오래된 소꿉친구랑 사귀기 시작한 친구는 깨볶는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그 모습이 왠지 얄미워서 눈 앞에 놓인 케이크를 포크로 푹푹, 쑤시다가 옷에 떨어뜨리고 말았다.
 
"아, 새 옷인데! 또 옷 지저분하게 하고 왔다고 와타한테 혼나겠..."
"...헤어질거라며."
"그럴거라니까, 진짜로!"

왠지 히죽거리는 친구의 표정을 보니 괜스레 짜증이 났다. 그래, 오늘은 꼭 헤어지자고 말을 하는거야! 이번엔 정말 물릴 생각도 없다, 오늘 꼭!


**

집이 가까워질수록 괜히 발걸음이 느려졌다. 들어가서 헤어지자고 말을 할 참인데, 대체 어떻게 말을 해야 하는거지? 상처 안 주고 헤어지는 방법이 없다지만, 그래도 최대한 상처 덜 주고 헤어지고 싶은데. 

"...크게 잘못한게 있는것도 아닌데 말야."

이럴 때마다 참 서글퍼진다. 그는 잘못한게 하나도 없다. 그냥, 처음부터 주욱 항상 그대로였는데 누군가의 마음이 식어서, 그래서 긴 시간 함께 해온 인연을 끊는다는 것은 정말 잔인한 일이다. 만약 반대 상황이었으면 나는 아마 한동안 아무것도 못 할 정도로 마음의 상처를 받았을 것이다.
그럼에도, 이렇게 다 끝난 인연을 붙잡고 있는 미련한 짓은 하지 않는게 더 낫다는게 뭔가 아이러니 했다.

"..츄덬아."
"왁, 깜짝이야! 인기척좀 해!"

갑자기 튀어나온 그 때문에 나는 깜짝 놀라 비명을 질렀다. 그는 픽, 가볍게 웃더니 손을 내밀었다. 나는 또 엉겁결에 그 손을 잡았다.
헤어지기로 했잖아, 츄덬아. 지금 말해. 말하라고! 마음속에선 그렇게 시끄럽게 떠들고 있었지만 나는 쉽게 입을 뗄 수가 없었다.

"저기..오늘..."
"오늘 저녁은 고기 감자 조림이야."
"앗싸, 신난다!!! 와타가 만든 고기감자조림 진짜 맛있어!"

헉, 나도 모르게 하이텐션이 되었다. 그치만, 그치만 정말로 와타루가 만든 고기감자조림은 세계 최고라고 해도 단언이 아닐 정도인걸.
엄마한텐 미안한 말이지만 엄마가 만든 것보다 훨씬 맛있었다.

"요새 왠지 기운이 없어보여서."
"어? 아....응."

그 말에 괜히 양심이 콕콕 찔렸다. 그는 여전히 변함이 없는데, 나만 이렇게...... 

손을 잡고 어느새 맨션 앞에 도착했다. 자연스럽게 그가 꺼내든 맨션 열쇠에는 나와 똑같은 모양의 스트랩이 걸려있었다. 첫 데이트날, 같이 샀던 분홍색 돌고래 모양의 스트랩. 남자가 무슨 분홍색이냐며 투덜거리던 그는 어느새 자연스럽게 스트랩을 사용하고 있었다.

"뭐해, 안 들어가?"
"어? 어,어어.."

멍하니 그 스트랩을 바라보던 내 팔을 가볍게 끌어 집 안으로 들여보낸 그는 바로 손을 놓고 주방으로 향했다. 손이 놓아지는 그 순간이 왠지 조금 안타깝게 느껴져서, 나는 고개를 붕붕 저었다. 안돼 안돼. 마음 약해지지 말자, 오늘 나는 3년 사귄 이 남자와 헤어지는거야.

왠지 현관에서 우물쭈물 하고 있자니 부엌에서 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밥, 금방 될 테니까 손 씻고 와."
"..."

A. 망설일 시간이 없다, 바로 와타루를 부른다.

"저, 저기....."
"응?"
"아, 나 할말이......."
"어, 말해."

그는 돌아보지도 않고 착착착, 열심히 저녁 준비중이었다. 그 모습이 괜히 열받았다. 지금 할 말이 있다는데 저렇게 건성으로 '말해' 라고 하고 싶냐!
하지만 헤어짐을 말할때 화를 내는건 뭔가 염치 없는 일이다. 일단은 참자.

"와타루, 잠깐만. 잠깐이면 되니까.."

그 말에 그가 멈칫했다. 그도 뭔가 낌새를 챈 것 같았다. 그는 후, 하고 가볍게 한숨을 쉬더니 분주하던 손을 멈추었다. 그리곤 천천히 다가와서..

"..현관에서 할 정도로 급한 말이야?"
"그건.."

기껏 불러놓고 우물쭈물하는 모습을 보이자 그의 표정은 왠지 불만스러워졌다. 미간의 주름이 진해지고 있었다.

"아, 너!"
"어?"
"이게 뭐야, 새 옷인데!"

아까 흘린 케이크 자국을 발견한 모양이었다. 그럼 그렇지, 잔소리 왜 안나오나 했다. 나는 왠지 모르게 기운이 쭉 빠지고 말았다.

"나이가 몇인데 아직도 이렇게 질질 흘리고 다녀? 이거 얼룩 빼기가 얼마나 힘든데!"
"지금 그게 중요해? 그거보다..."
"어, 중요해. 기껏 불러놓고 말도 못 하는데 네가 하는 말이 중요한 말인지 어떤지 내가 어떻게 알아?"

그 말에 나는 또 할 말을 잃었다. 아니, 맞는 말이긴 한데. 지금 내가 진짜 중요한 얘기 하려고 하는데 그걸 못 참냐? 그거 지적 안 하면 어디 병이라도 나나? 부글부글, 속에서 뭔가 끓어오르는 듯 했다. 하지만 감정적으로 부딪히면 난 백퍼센트 밀린다, 이건 이 남자랑 사귀면서 깨달은 사실이었다.

"어떻게 하루도 평탄한 날이 없냐, 쯧."

으아, 도저히 못 참겠다. 마지막에 쯧, 하고 혀를 차는 소리에 나는 무언가 폭발 스위치라도 눌린 듯 분노를 해방시켰다.

"지금 내가 중요한 할 말 있다는데 그게 그렇게 중요해?"
"후... 그래, 말해. 말하라는데 왜 말을 못해?"
"그래, 그냥 말한다 내가!!! 이러는거 진짜 지쳤어! 우리 엄마도 이렇게까진 안 하겠어!"
"하? 옷에 뭐 묻히고 오면 그거 누가 다 처리하는데? 너희 엄마가 아니라 내가 하잖아."
"그래, 그거 참 고맙다! 근데 해줄거면 좀 그냥 조용히 해주면 어디가 덧나? 꼭 칠칠맞네, 사고치네 하는 말투로 사족을 덧붙여야 속이 시원해?"
"하루 이틀이 아니잖아!"
"아, 진짜 지겹다, 그만 좀 하라고! 이럴때마다 진짜 정이 뚝뚝 떨어져!"
"...하..."

말을 꺼낸 나 조차도 깜짝 놀라고 말았다. 상처주지 않기로 했는데, 못됐다 나. 아무리 그라도 상처받았을것이다. 방금전까지 폭발할 것 같았던 분노는 어느새 사라진지 오래였다.

"아, 저기....."
"그래, 정 떨어지게 해서 미안하다."

그는 그렇게 말하며 등을 돌렸다. 

"..시간이 필요해? 아니면, 그냥.."
"........"

등을 돌려서 표정을 볼 수는 없었지만, 나는 알 수 있다. 그는 지금 매우 상처받았다. 그는 '...아니다.' 라고 중얼거리고는 부엌으로 다시 돌아갔다.
통통통, 칼로 재료를 써는 소리와 솨아아 하는 물소리, 보글보글 끓는 소리까지 아까 그대로 돌아왔다. 하지만 이미 벌어진 일을 되돌릴 수는 없었다.


**


다음 날 아침, 그는 조용히 사라졌다. 자신의 짐을 모두 챙겨서, 정말 조용히 떠났다. 깨끗하게 개어진 이불 외에는 그가 있었던 흔적이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마치 원래 아무도 없었던 것 처럼, 그렇게 자연스럽게 그는 사라졌다.


"...가버렸네."

왠지 마음이 허했다. 천천히 부엌으로 나오니, 어제 만들었던 고기감자조림과 밑반찬 몇 가지가 차려진 아침상이 보였다. 모락모락 김이 나는 걸 보면, 차린지 얼마 안 된 모양이었다. 그래봐야 그는 없지만.

"......."

바스락, 그 옆에 조용히 놓여있던 작은 쪽지를 집어들었다.


[츄덬에게.
혹시 식으면 전자레인지에 30초정도, 비닐 랩 씌우고 돌릴 것.
그냥 돌리면 고기에 남은 수분때문에 찌꺼기가 튈 수 있으니 꼭, 랩 씌워서 돌려야 해.]

"......누가 이런것도 모를까봐."

픽, 웃으며 테이블에 앉았다. 가지런히 놓여진 젓가락도, 그 밑에 받쳐진 당근 모양의 젓가락 받침도. 전부 둘이서 고른 것이었다.

"잘 먹겠습니다~"

조용한 집안에, 들을 사람도 없는데 나는 괜스레 큰 소리로 그렇게 말하고 젓가락을 집어들었다.

"..맛있다."

언제나 변함 없는 맛이었다. 그러고보니 요리할때의 그 옆모습, 내가 참 좋아했었는데. '그러다가 손 베이는거 아니야?' 라며 손을 떨던 그를 놀리곤 했었네. 그는 단 한번도 손이 베인 적이 없었지만 말이지.

뭔가 꽉 막힌듯한 기분으로 나는 그가 마지막으로 차린 아침상을 깨끗이 비웠다. 체하지 않도록 천천히, 꼭꼭 씹어서, 그가 남긴 온기까지 전부 깨끗하게 먹어치웠다.

"아, 설거지 귀찮은데. 그래도 1인분이라 금방 끝나겠네."

그렇게 중얼거리며 자리에서 일어나 싱크대로 향했다. 그가 자주 두르던 남색 앞치마도 보이지 않았다.

"그 와중에 또 앞치마는 챙겨가셨구만... 어?"

내 눈에 아까 보지 못했던 것이 들어왔다. 그의 흔적이다.

내가 본 것은...


A. 싱크대 옆에 놓인 분홍색 돌고래 스트랩

싱크대 옆에는 분홍색 돌고래 스트랩이 놓여 있었다. 맨션 키가 함께 붙은, 둘이 같이 샀던 분홍색 돌고래 스트랩. 진짜로 안 올 생각이구나, 나는 그렇게 중얼거리며 열쇠를 들어 주머니에 집어넣었다. 아, 먼저 마음먹은건 난데 왜 자꾸 이런 울적한 기분이 드는거지. 

이상하게 자꾸만 눈가가 뜨끈해졌다. 정신 차리자, 아침부터 꼴 사납게 울지 말자. 나는 심호흡을 크게 두 번 했다.

"오늘이 휴일이라 다행이다."

그런 덧없는 소리나 하면서, 나는 내 마음을 진정시키며, 단촐한 설거지를 마쳤다. 그래, 1인분이라서 금방 끝나네. 이건 좋다.
설거지를 마치고 몸을 돌리는 순간, 무언가가 툭 하고 떨어졌다.

"아, 이거 낡아서 그런가보네."

분홍색 돌고래 스트랩이었다.
그가 남기고 간, 맨션 열쇠와 함께 붙어있던 스트랩이 바닥에 혼자 떨어져 있었다. 쭈그려 앉아서 들여다보니 열쇠와 이어지는 부분이 상당히 많이 녹슬어있었다.
맨날 물을 만지고서 열쇠를 만지니까 그렇지, 라면서 괜스레 툭툭 스트랩을 건드려보았다.

"어?"

바닥에 투둑, 하고 투명한 물방울이 떨어졌다. 그것을 기점으로, 눈 앞이 따뜻해짐과 동시에 흐려지는 것을 느꼈다. 바닥에 떨어진 스트랩, 그리고 혼자 덩그러니 쭈그려 앉아있는 나. 나는 바닥에 놓인 외로운 스트랩을 손에 꼭 쥐었다.


그렇구나, 우리 헤어진거구나.

나는, 그 자리에서 참을 새도 없이 울었다. 아무도 없는 고요한 집안에, 유일하게 들리는 울음소리가 메아리쳐 내게 다시 돌아왔다.


**



"아....... 기운없다."

아침에 챙겨줄 사람이 없어서, 물론 내가 게으른 탓이 더 크지만... 아침에 급하게 나오느라고 미처 아침밥을 챙기지 못했는데 그게 이렇게 반향이 클 줄이야. 나는 출근해서 좀비처럼 테이블에 턱을 괴고 한숨을 푹 쉬었다.

아아 배고파. 헤어짐의 슬픔보다 배고픔이 먼저라니. 인간은 왜 밥을 먹어야만 하는걸까.

"어? 츄덬씨 왜이렇게 기운이 없어요? 무슨 일 있어요?"

지나가던 팀장이 내게 말을 걸었다.  후지가야 타이스케, 일명 '가야상'. 말끔한 외모에 다정한 배려심까지, 사내 여자 사원들의 마음을 설레이게 하는 장본인이었다. 

"그냥.....아침을 못 먹어서 배가 고프네요."
"그럼, 이거 먹어요."

그는 그렇게 말하며 내 앞에 샌드위치와 커피를 내려놓았다. 회사 앞에서 파는, 조금 비싼 샌드위치였다. 유기농 재료를 넣었다나 뭐라나 하면서 빵빵하게 광고를 했던 그 샌드위치. 나도 모르게 군침이 도는걸 느꼈으나 이내 이성을 찾고 대답했다.

"아, 그치만 그럼 팀장님은....."
"응? 난 괜찮아요. 밥 먹고 왔는데도 뭔가 출출해서 이것저것 사들고 온 것 뿐이니까."
"그래도.."
"나는, 이거 먹으면 돼요. 아, 혹시 다이어트 중이에요?"
"아뇨, 아뇨. 그냥.. 죄송해서요."

그 말에 그는 내 어깨를 가볍게 두들기고는, 특유의 차분한 목소리로 장난스럽게 속삭였다.

"여기 말고, 탕비실 가서 몰래 먹어요. 여기서 먹으면 배고픈 다른 팀장님이 화 낼테니까."
"네, 네.. 감사합니다."

나도 모르게 설레었다. 긴 연애에 익숙해져서, 설렘따윈 이제 없을 줄 알았는데. 정말 오랫만에 느껴보는 설레임이었다.
그리고, 그가 준 샌드위치는...


"장난 아니더라, 진짜 비싼 값을 하던데?"
"아니 것보다 너.. 진짜 헤어진거야?"
"뭐어..... 그렇지 않을까? 시간을 두자, 고는 했지만 그 말 그대로 믿는 바보가 어딨어."

내 말에 친구는 짐짓 심각한 표정이 되었다. 

"너..괜찮은거야?"
"응? 보다시피. 솔직히 첫날은 좀 슬펐는데, 아침에 보니까 슬픈것보다 배고픈게 먼저 느껴지더라. 하하."

달그락 달그락, 괜스레 아이스티의 얼음을 휘저으며 말했다. 친구는 여전히 심각한 표정이었고, 나는 의외로 덤덤한 내 모습에 조금은 만족 중이었다.

"근데, 좀... 오랫만에 설레더라. 그런 취급."
"헐."
"야야, 그 표정 뭐냐? 어차피 프리한 몸인데 뭐 어때!"
"야, 너 회복이 너무 빠른거 아니냐? 아무리 내 친구라지만 정말 무섭다 무서워."

그녀는 절레절레, 고개를 저었다. 하이고, 그러시겠지. 본인 연애사업이 잘 되다 못해 아주 풍년이라 이거지?

"근데 뭐..."
"?"
"정말, 잘 해볼 생각이 있어? 그..."
"가야상?"
"응. 그 사람이랑."
"솔직히 말해도 되냐."
"어."
"솔직히 베리땡큐지. 그정도면 야, 평생 업고 다닌다 내가."

농담이 아니라, 정말 베리땡큐인 남자다. 다정하고, 능력있고, 잘생기고, 세심하고 심지어는 돈도 많은 남자다. 수많은 여성 사원들이 끊임없이 들이댔음에도 불구하고 더러운 소문 하나 없는, 그런 남자다. 그 주변에서 한번도 싫은 소리나 나쁜 소리가 나와본적이 없는 무적의 남자.
아마 이게 드라마라면 그는 남자 주인공이었을 것이다. 돈도 많고, 능력도 좋고, 잘생기고 착하기까지 한 백마탄 왕자님.

"그정도야?"
"어. 우리 회사 여직원들의 꿈과 로망이신 분이다."
"그렇게 말하니까 괜히 나도 궁금해지네.."
"떽, 남친 있으신분이 어딜! 걔 그러다가 운다 너?"
"울긴 뭘 울어, 그런걸로 울거면 애저녁에 떨어져나갔지."
"아이고, 또 남친 얘기 나왔다고 광대 폭발하는거 봐라."
"시끄러!"

시답지 않은 대화를 하면서 나는 평소처럼 웃었다. 어느덧 그가 없는 7일째가 지나고 있었다.


"다녀왔습니다아~"

아무도 없는 거 뻔히 알면서 나는 버릇처럼 인사를 했다. 그가 없는데도 '외출 후에는 손 씻어!' 라는 말이 들리는 것 같아서 쪼르르 달려가 손을 씻었다.
한동안은 슬펐다. 우리가 함께 쌓아온 3년의 시간은 결코 짧은 것이 아니었다. 주변에선 3년이나 사귀었다는 말에 '그렇게 오래?' 라고 놀라곤 했다.
내게 있어 그와 함께한 3년은 그렇게 길지 않았는데, 왜 주변에선 그렇게 오래 만났냐며 놀라워 했는지, 그 당시의 나는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러나 헤어지고 나서 알았다. 3년의 추억은, 정말 끝도 없이 계속 흘러나와서 날 자꾸만 울게 만들었다.

일요일 낮의 햇빛, 매일 하는 뉴스, 지나가는 길에 보았던 판매 광고까지. 뭐 하나 그가 새겨져있지 않은 것이 없었다.
그럼 난 또 한참을 울다가, 또 시간이 지나 침착해지고. 다시 또 울고, 또 다시 멀쩡해지고를 며칠 반복했다.
7일이나 지났는데도, 가끔 눈물이 돌 때가 있었다. 하지만 첫째날만큼 울진 않았다. 

"..익숙해지는구나. 금방"

조금은 자조적인 말투로 말했다. 가끔 그가 생각나는 것 말고는 힘든 일은 없었다. 하지만 단 하나.

"........아 진짜 맛없어......."

계란프라이 하나도 간신히 하는 주제에, 그동안 정성스런 그 손맛에 길들여진 입맛은 다시 내려올 줄을 몰랐다. 차라리 입맛이라도 별로였다면 좋았을것을. 이미 그 맛에 길들여진 나에게 인스턴트 식품은 너무나 자극적이었고, 직접 만든 요리는 너무나 처참했다.

"이상하다. 요리책 보고 그대로 따라하는데 왜 맛이 없지?"

언젠가 라면을 끓이다가 물을 잘못 재어 한강을 만들자 그는 '절망스러울 정도의 손재주' 라며 나를 놀리곤 했다. 그 말에 나는 '그러는 와타루는,' 이라고 말하려다가 내가 그보다 잘 할 수 있는게 뭔지 한참을 생각하느라고 말을 잇지 못했던 걸로 기억한다. 아아, 기억을 해내도 이런 비참한 일을.
나는 고개를 젓고, 여전히 맛 없는 오늘의 내 요리를 입에 쑤셔넣었다.


다음 날, 여전히 맛 없는 요리에 기운을 잃어 끙끙거리며 탕비실로 향했다. 빈 속을 커피로 달래보려고 하는데, 그가 나타났다.

"오늘도, 아침 못 먹었어요?"
"아, 팀장님..."
"아침, 중요하대요. 점심이나 저녁보다도 더."
"알죠.. 아는데..."

제 손재주가 절망적이어서 차마 아침에 먹을 수가 없어요, 라는 대답은 못하고 우물쭈물 거리자 눈 앞에 작은 도시락이 놓였다.

"이거 줄게요."
"어, 이게 뭐에요?"
"츄덬씨처럼 아침 못 먹고 출근하는 사람을 위한 도시락."
"네?"

그는 여전히 부드러운 미소를 짓고 내게 조그맣게 말했다.

"직접 만든거라서, 맛은 없을지도 모르지만요."

그 말에 나는 또 설레었다. 나를 위해서 누군가 만들어준 도시락, 오랫만이다. 하지만 이걸 왜 나한테..?
설마, 하는 마음에 그를 보고, 또 다시 도시락을 보고. 둘을 번갈아보고 아무 말도 하지 못하자 그는 또 웃었다.

"빈 도시락은, 나중에 돌려주세요."

그 말을 남기고 천천히 돌아서는 그를 보며 나는 왠지 모를 설레임과, 기대감을 느꼈다.



A. 팀장님한테 점심 같이 먹자고 해 볼까?

"팀장님!"

그 말에 그가 다시 내 쪽으로 돌아보았다. 잘생겼다, 정말. 아니, 이게 중요한게 아니고. 

"저기,저.."

오랫만에 느끼는 긴장과 떨림이다. 쉽게 말을 꺼내지 못하고 우물쭈물거리는 나를, 와타루와는 달리 그는 기다려주었다.

"오늘 점심...같이 하실래요?"

눈을 질끈 감고 말했다. 너무 긴장해서, 덥지도 않은데 오랫만에 땀이 났다. 차마 그를 쳐다보지도 못하고 있는데 또각또각, 구둣소리와 함께 그의 멀끔한 구두코가 내 눈 앞에 섰다.

"미안해요."

아, 역시 내 착각이었구나. 나는 얼굴이 빨개져서 고개를 들 수가 없었다.

"그치만,"

그는 한걸음 더 다가왔다. 그리고 고개를 들지 못하는 내게, 또 다정한 말투로.

"저녁은 안 될까요?"
"네?..."

고개를 들자 왠지 조금 쑥스러워 하는 그가 보였다. 괜스레 나까지 부끄러워지는, 그런 미소였다.

"이따가 회사 끝나고 만나요. 제가 잘 아는 곳이 있으니까."
"네,네!"

심장이 쿵쾅거렸다. 나는 오랫만에 느끼는 설레임과 긴장에 하루종일 일이 잡히지 않아 애를 먹었다.

[츄덬씨, 30분 뒤에 정문 앞에서 만나요.]

도착한 문자가 설레이다 못해 심장이 아팠다. 아, 이 간질간질한 느낌 정말 오랫만이다. 나는 퇴근하자마자 화장실로 달려가 얼른 옷매무새를 고쳤다.
색이 옅어진 입술을 덧그리고, 다시 보송보송한 파우더를 얇게 바르고. 마치 첫 데이트를 하는 것 처럼 들뜬 채였다.

"츄덬씨."
"아, 팀장님. 죄송해요. 일 마무리를 하느라고.."
"아뇨, 괜찮아요. 예약 시간도 조금 넉넉하게 잡았구요."
"네,네에.."

시간 여유까지 두고 가게를 예약했다니. 그의 세심함에 새삼 놀랐다. 가게는 회사에서 그리 멀지 않았다. 조금 구석에 있는 작은 일식 가게였다.

"아..여기.."
"이 집, 사람은 많이 오지 않지만 정말 맛있는 곳이에요. 숨겨진 맛집이죠."
"...."

네, 알아요. 라는 말은 꿀꺽 삼키고 간판을 다시한번 보았다. 여긴 와타루가 일하는 가게다. 지금 들어가면, 아마 와타루를 만날 수 있을 것이다.
내 옆에, 다른 사람이 있다는 걸 보면 와타루는 무슨 생각을 할까. 괜스레 주춤거리자 팀장님은 '혹시, 일식 안 좋아하세요?' 라고 물었다.

"아뇨, 아니에요. 들어가요."

나는 눈을 한번 감고, 심호흡을 크게 한번 했다. 우린 헤어진 사이다, 그러니까 와타루도 아무런 생각 안 할거야.

"어서오세요."

아, 하필 와타루와 딱 마주쳤다. 와타루는 조금 놀란 듯 하더니, 이내 평소와 다름없는 얼굴로 돌아왔다.

"몇 분이세요?"
"두 명이요, 아까 예약했습니다."
"성함이?"
"후지가야입니다."
"..네, 확인되었습니다. 이쪽으로 오세요."


앞장서서 걷는 와타루의 등을 빤히 바라보았다. 조금 마른 듯한 느낌이 들었다. 밥은 제대로 먹고 있는 걸까, 싶다가도 밥만은 제때 잘 챙겨먹고 있을거란 생각이 들어 남몰래 풋, 하고 웃었다. 

손을 내밀면 바로 닿을듯한 거리에 와타루가 있다. 지금 내 옆에는, 다른 사람이 동행하고 있는데도. 나는 계속 와타루의 등만 바라보았다.

식사가 어떻게 끝났는지는 기억이 나질 않았다. 그저, 오랫만에 본 와타루는 조금 말라 있었고, 오랫만에 맛본 와타루의 음식은 여전히 따뜻했고,
팀장님의 배려심이 가득차 부담없이 식사를 마친 와중에도 나는, 자꾸만 바삐 움직이는 와타루를 힐끗 보게 되었다는 것만이 기억났다.


"오늘, 식사 감사했습니다."
"아니에요. 맛있는 곳이라 꼭 소개해주고 싶었거든요."
"정말, 정말로 맛있었어요."
"그래요? 그러면 다행이네요. 그럼, 조심히 들어가세요."
"네, 감사합니다."

결국 그 날 음식값은 팀장님이 전부 냈다. 내가 옆에서 어쩔줄 모르며 저도 내겠다고, 제가 먼저 얘기한거니까 그렇게 해 달라고 했지만 그는 끝까지 완고했다. 그리고 차로 집 앞까지 데려다주기까지, 정말 완벽한 데이트였다.

멀어져가는 그의 차를 바라보며 나는 다시 나 혼자만의 맨션으로 향했다. 오늘따라 텅 빈 집이, 더 쓸쓸하게 느껴졌다.


**


잠시 와타루를 본 것 만으로도 이렇게 일렁이는 마음이 미웠다. 그렇게 모질게 끊어내길 원했으면서, 먼저 그를 떠나기를 바랐으면서, 이제와서.

문득 핸드폰을 꺼냈다. 단축번호 1번을 누르면, 와타루에게 연결될 것이다. 바빠서, 라는 핑계로 여전히 지우지 못하고 있는 그 번호가, 버튼 하나로 연락이 되기도 하고, 혹은 지워지기도 할 것이다.

손가락이 계속, 1번 버튼 위에서 어쩔 줄을 몰랐다. 웃기지도 않는 일이다. 헤어진 연인이, 여전히 전 애인의 전화번호를 단축키로 등록해 둔다니. 이제와서 다시 연락해보고 싶다고 생각하다니. 하지만 나는, 그 웃기지도 않는 상황에도 갈팡질팡하고 있다. 

"..괜찮을 줄 알았는데, 이게 뭐야..."

핸드폰을 든 손이 떨렸다. 

"...보고싶어."

새어나온 말에 푹, 얼굴을 묻었다. 바보같은 얘기다. 문득 얼굴을 묻고 생각했다.

내가 왜 헤어지고 싶어했더라? 마음이 식어서, 였던가? 

"식긴 뭐가, 식었다는거야...... 바보 아냐?"

나는 결국, 떼를 쓴 것 뿐이었다. 날 더 봐줘, 날 더 사랑해줘. 그렇게 말하는 대신, 괜히 심통나서 '이제 너한테는 설레지 않아!' 라면서, 그렇게 하면 혹여나 그가 날 더 봐 줄까봐, 그랬던 것이다. 언제나 변함이 없는 그의 모습에, 나만 더 좋아하는 것 같다고 그렇게 생각해서.


그때, 전화가 울렸다.

"..........하......"

와타루였다.

A. 전화를 받는다.


"여보세요?"

아, 괜스레 목소리가 떨렸다.

"..요코오 와타루입니다."

응, 알고 있어. 네 번호를 지우지 않았으니까.

"응.. 어쩐 일이야?"
"..안 놀라네."
"그냥, 왠지 연락 올 것 같아서."

내 말에 그는 실없이 웃었다. 살짝 웃음소리가 들리자 나는 또 안심했다.

"가게에, 열쇠 놓고 갔더라."
"열쇠?"
"응. 집에 못 들어가고 있을까봐."

열쇠? 내가 직접 열쇠로 문을 열고 들어왔는데 무슨 소리지?
문득 머릿속을 스치는, 와타루가 두고 갔던 맨션 열쇠가 떠올랐다. 아, 그거구나. 

"아, 아아... 어쩐지! 찾아도 안 보이더라!"

나는 나도 모르게, 거짓말을 하고 있었다. 

"그럼 지금 어디야?"

그의 걱정스런 말투에 눈물이 나려고 했다. 바보야, 쓸데없이 걱정해주지 말란 말이야.

"음...치..친구네..."
"그렇구나."
"응..."
"...나중에 내가 우체통에 가져다 놓고 갈게."
"아,아니! 내일, 내일 내가... 회사 끝나고 근처에 갈 일 있으니까 들러서 가지고 갈게!"

무슨 용기였는지 모르겠다, 나는 불쑥 그렇게 말했다. 그냥, 한 순간이라도 너랑 얘기하고 싶어. 

"....그래."
"7시 쯤에...갈게."
"..응."

그렇게 싱겁게 끝난 대화였지만, 나는 전화가 끊어지고 나서도, 한 동안 가만히, 핸드폰을 바라보았다.
화면에 뜬 와타루 사진이, 거기에 같이 찍혀있는 내가, 너무나도 행복해보였다. 나는 그 사진을 어루만졌다.

천천히, 그의 코 끝, 턱 끝을 손가락 끝으로 따라가며 그를 떠올려 보려 애를 썼다.
벌써, 잊혀진것만 같았다. 있을땐 당연하다고 생각했는데, 이제와서..........


**

눈을 뜨자마자 식욕이 당겼다. 맛이 있는지 없는지는 상관 없었다, 나는 인스턴트 된장국에, 인스턴트 쌀밥을 먹었다.
솔직히 맛은 없었다. 그치만, 오늘은 먹어야 한다. 와타루를 만나야 하니까.


"어, 오늘은 왠지 기운이 넘쳐 보이네요."
"그런가요? 오늘은 아침을 든든하게 먹고 왔거든요."
"그거 봐요, 역시 아침은 중요하죠?"
"그렇네요, 꼭 챙겨먹으려구요."
"그래요, 잘 생각했어요."

팀장님은 그렇게 말하며 웃었다. 

종일 시간이 더디게 흐르는 듯 했다. 일을 하는 내내, 나는 시계를 힐끔거렸다. 
괜스레 목이 타서, 자꾸만 탕비실을 들락거렸다.

눈에 보이는게 커피이다보니 자연스레 커피를 자꾸 마시고 있었다.

또 다시 탕비실에 들어간 나는,


B. 모르겠다. 그냥 눈에 보이는 커피 타 마실래.

네 잔째, 커피를 타고 있는데.

"츄덬씨, 피곤해요?"
"네?"
"아니, 아까부터 계속 커피를 마시길래.."
"아, 아뇨... 그냥... 아, 맞다!"

나는 얼른 자리로 뛰어들어가 도시락을 들고 왔다.

"이거요, 어제 도시락.."
"아, 아... 고마워요."
"맛있더라구요, 되게."
"다행이네요."
"그치만요,"

내 말에 팀장님이 나를 바라보았다. 이거, 말 해도 되나 모르겠다. 말하려니 괜히 쑥스럽기도 하고, 민망하기도 했다.

"와타루가 만든 게, 저한텐 맞더라구요."
"..와타루?"
"제 남자친구에요."
"아, 와타루라고 하는구나."
"이름, 특이하죠?"
"그러게요."

팀장님은 또 웃었다. 그는 웃으며 등을 돌려 탕비실을 나갔다. 

"아쉽네요."

라는, 의미심장한 말을 남기고 빠져나간 그 등을 보며, 나는 나도 모르게 고개를 꾸벅 숙였다.
미안해요, 그리고 감사합니다. 많은 뜻을 담은 인사였다.


**


느릿느릿 가는 것만 같던 시간이 어느새 흘러 퇴근 시간이 되었다.
나는, 정말 숨이 턱에 찰 정도로 달렸다. 
이렇게 달려 보기가 얼마만이더라, 만나면 힘들었다고 잔뜩 칭얼거려 줄 테다!

"어서오세요~"
"저기, 후... 요..요코.....하...."

숨도 고르지 못하는 내가 조금 이상해 보였으려나? 가게 점원은 요코..? 하더니 아, 하는 표정을 지었다.

"요코오 상이요?"
"네, 네..."
"지금, 잠깐 쓰레기 버리러 나가셨어요. 저기 뒷문쪽으로 가면 계실거에요."
"가, 감사...후.."

숨도 고르지 못하고 나는 뒷문으로 비척비척 향했다. 아, 나오기 전에 머리랑 옷 다 정리하고 나온건데 다 흐트러졌겠다!

바로 멍하니, 밖에 걸터 앉아있는 와타루가 보였다. 

"......."

나는 차마 이름을 부르지 못했다. 분홍색 돌고래 스트랩을, 그 끝에 붙은 작은 맨션 열쇠를 만지작거리는 그 표정이 너무나, 안타까웠다.
소중한 물건이라도 되듯, 내가 그렇게 좋아하던 가느다란 손 끝으로 그는 천천히 훑어내렸다. 웃는 얼굴이 조금 씁쓸해보여서 가슴이 아렸다.

그는 스트랩을 눈 높이로 들었다. 
조금 어슴푸레해진 저녁에, 은은한 가로등이 비추어 스트랩 테두리가 반짝 빛났다.


그는, 그대로 그 스트랩에 가볍게 키스했다.


아아, 나는 그의 뭘 봐왔던 걸까. 나만 좋아한다고, 그렇게 떼를 쓰는 동안, 나는 대체 무엇을 봐 온 것일까. 
내가 제일 사랑하는 사람이 눈 앞에 있는데도, 그 사람을 믿지 못하고 왜 쓸데없는 불안에 휩싸여 있었던 걸까. 
눈물이 나서 와타루가 흐릿하게 보였다. 목 끝까지 차오른 와타루, 라는 울림이 따가웠다. 
말해야 하는데, 당장 네 이름을 부르고 싶은데, 가슴속이 꽉 차올라 아무말도 할 수 없었다.

간신히 숨을 비집고,

"와타..루..."

그를 불렀다. 그 작은 목소리에도, 그는 돌아봐주었다. 
눈물을 주체할수가 없어서, 나는 말도 잇지 못하고 끅끅, 가쁜 숨을 몰아쉬며 눈물을 흘릴 뿐이었다. 
당황한 와타루가 다가와서 왜 그러냐고, 걱정스럽게 말을 해 주어서 나는 엉엉 울었다.

"미안, 미안해...와타루......"
"왜그래, 말을 해 줘야 알지."

그는 자연스럽게 나를 안고 토닥여주었다. 오랫만에 안긴 그 품은 변함없이 따뜻했다. 

미안해, 미안해. 나는 그냥 그렇게 울먹이며 똑같은 말을 반복했다.

"츄덬아."
"미안, 미안해...나, 그냥... 어리광부린거였어."
"..."

간신히 연 입에서 나온 말에 그는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그냥, 나를 더 사랑해달라고, 내가 더 좋아하는거 같다면서, 와타루를 못 믿고..... 내가....그래서..."
"응."

아, 말하지 않으면 터져버릴 것 같다. 꾹꾹 참아왔던 외로움과 미안함, 그리고 사랑스러운 그에 대한 마음이 참을 수 없이 터져나왔다.

"그래서, 상처줬어... 누구보다 제일 소중한 사람한테, 아무 잘못 없는 와타루한테...."

내가 무슨 말을 하는지도 모르겠다, 와타루. 와타루. 
몇 번이고 부르고 싶었던 그 이름을, 수 없이 부르면서 나는 계속 울었다.

"아니야... 네 잘못 아니야."

그의 목소리가 들렸다. 물기어린 그 목소리가, 조금 떨려서, 나도 모르게 숨을 멈추었다.

"미안해, 미덥지 못해서."
"와타..."
"미안해, 너를 자꾸 불안하게 만들어서."
"...."
"그렇게, 있는 폼 없는 폼 다 잡고 나와서, 결국 여전히 너한테 사과하게 만드는, 이런 못난 놈이라서.. 미안해."
"..이씨, 왜 울어어...."

엉엉, 우리는 서로를 끌어안고 계속 울었다. 어찌보면 바보같은 일이다. 
같은 마음을 가지고 있으면서, 서로의 마음을 믿지 못하고,
유치하게 싸우고, 쉽게 이별을 입에 담고. 
뒤늦게 후회하면서 사과하는, 남들이 보기엔 조금 우스운 일일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우리는 그 순간이 절실했다.



"... 너 때문에 오늘 장사 다 접었어. 책임져."

그가 내 어깨에 기댔다.

"...와타루 때문에, 나도 오늘 일 다 했어. 책임져."

풋, 그가 웃었다. 잡은 손을 괜히 휘적거려보았다.

"돌고래."
"응?"
"이거, 네 거 아니잖아. 왜 거짓말 했어?"

헉, 들켰다.

"...아, 아닌데? 내거 맞는데?"
"바보야, 내 돌고래는 꼬리가 조금 불량이라서 흠집이 있단 말야. 봐."
"아, 정말이네...."
"근데,"

그가 나를 바라보았다.

"일부러, 알면서 전화했어."
"....치."
"핑계삼아서, 한번이라도 보고 싶어서. 그래서 전화했어."

콩, 이마가 부딪혀왔다. 오랫만에 보는 와타루의 긴 속눈썹 밑에 진 그늘이, 사랑스러웠다.

"이거, 내가 가져도 돼?"
"아, 열쇠? 응. 와타루꺼니까.."
"아니, 그거 말고."

그렇게 말하면서 그는 웃었다. 잡은 손을 흔들며, 그는 입모양으로 '이거' 라고 말했다. 그 말의 뜻을 뒤늦게 깨닫고, 내 얼굴은 확 달아올랐다.

"안돼?"
"...심술쟁이."

나는 눈을 감았다. 오랫만에 느껴보는 와타루의 맛은, 왠지 조금 짭짤했다.


~Happy e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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